푸른 동해를 옆에 끼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길, 강릉 헌화로를 달려보신 적 있나요? 창문을 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파도와 깎아지른 절벽의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길에 '꽃을 바치는 길'이라는 뜻의 '헌화로(獻花路)'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한 편의 아름다운 노래, '헌화가(獻花歌)'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
1. 이야기의 시작, 절세미인 수로부인 🌸
이야기는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강릉 태수로 부임하게 된 고위 귀족 '순정공(純貞公)'에게는 눈부신 미모로 이름난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있었습니다. 순정공 부부가 강릉으로 향하던 어느 날, 동해안의 한 바닷가에서 잠시 쉬어가게 되었죠.
그들의 눈앞에는 병풍처럼 바다를 두른 천 길 높이의 돌산이 솟아 있었고, 그 아찔한 벼랑 위에는 탐스러운 붉은 철쭉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수로부인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마음을 빼앗겨 곁에 있는 시종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저 꽃을 꺾어 내게 바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종들은 모두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절세미인의 간절한 청에도, 깎아지른 절벽의 험준함 앞에 모두가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습니다.
수로부인의 미모는 신(神)조차 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헌화가 이야기 이틀 뒤에는 바다의 용(龍)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납치해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백성들이 '해가(海歌)'라는 노래를 불러 용을 위협하자,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이어져 나옵니다.
2. 사랑을 노래하다, 암소를 끌던 노옹의 '헌화가' 🎶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그 순간, 마침 암소를 끌고 그 곁을 지나가던 한 노인(老翁)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게 됩니다. 노인은 주저 없이 위험한 벼랑을 기어올라 철쭉꽃을 꺾어 와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자신이 지은 노래 한 수를 함께 헌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라의 대표적인 서정시, 향가 '헌화가'입니다.
📜 헌화가 (獻花歌)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 짧은 노래에는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순수한 연모의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암소를 놓는다'는 것은 생업까지 잠시 잊을 만큼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음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면'이라는 표현에서는 자신의 남루한 행색에 대한 겸손함과 함께 미(美)에 대한 순수한 흠모를 드러내는 신라인의 소박한 미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천 년을 이어온 길, '헌화로'의 탄생 🛣️
오늘날 우리가 달리는 강릉 '헌화로'는 바로 이 아름다운 설화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금진해변에서 심곡항에 이르는 이 해안도로의 풍경은 마치 설화 속 '천 길 높이의 돌 봉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도로를 개설할 때 바다를 메워 만들었기에,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아찔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하죠.
이제 헌화로를 지날 때,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 감상하지 마세요. 천 년 전,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기꺼이 벼랑에 올랐던 노인의 순수한 마음과 그의 노랫소리를 상상해 본다면, 평범한 드라이브가 훨씬 더 깊고 낭만적인 시간여행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헌화가 이야기 3줄 요약